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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두 번씩 3주의 시간을 쏟아붓고 면접 불합격하기


링크드인으로 지원한 한 회사에서 뜻밖에 회신이 왔다.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분야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규모도 크고 좋은 회사(글로벌 SaaS 기업)라 지원한 것이었다. 어쨌든 서류를 통과했으니 면접을 통해 내가 가지게 될 기회와 회사가 원하는 인재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Thanks for your interest in the XX position at ABC company.
We received your CV and would like to schedule a call to discuss this opportunity.

 

1차이지만, 2차였던 면접

나의 경력이 흥미로워서 1차를 스킵하고 바로 2차 면접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전달받았다. 한국어로 진행된 면접이었고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도 몇 가지 있었는데, 대답을 하는데 한동안 답을 내놓지 못해서 이 면접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운 좋게 5차 면접까지 어쩌다 보니 쭉 가게 되었다.

 

- ABC 회사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 지원동기
- 그전에 하던 직무 설명
- 지원한 직무와 그전에 하던 직무와의 갭, 그걸 채울 수 있을지?
- 팀 동료들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 XX 직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 평소 자주 쓰는 앱이 무엇이 있는지?
- 그 앱을 쓰는 이유
-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는 무엇이 있는지?
- 질문시간

 

Congrats! You're moving on to the next stage in the hiring process for the XX position. We would like to invite you for a video interview via Zoom with Jane Doe.

 

3차 면접

3차 면접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APAC에서 일하는 해당 부서의 팀장님이었는데 나의 직속 상사가 될 분이었다. 배우 루시 리우 같은 느낌에 미드 슈츠의 패러리걸 메건 마클 같은 이미지였다. 영어도 정말 프로페셔널했고, 내가 상상하는 커리어 우먼의 결정체였다.

 

질문의 내용은 주로 이전의 경력, 직무에 대한 이해도, 어떤 상사가 좋은지 등에 대한 것이었고, 마지막에 쿨하게 좋은 피드백을 줬다. 오늘 인터뷰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주면서 앞으로 남은 채용 과정에서 행운을 빈다고 말해줬다.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으로 인터뷰 중에 칭찬을 들어본 경험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루시 리우와 메건 마클 (걸 크러시 꺄)

 

4차 면접

4차 면접은 원래 보기로 예정되어 있던 분이 시간이 안되어서 갑자기 구글 미트로 접속했을 때 면접관이 바뀌었다. 인터뷰어로 예정되어 있던 분이 한국인이라 한국어로 실무 면접을 준비했는데, 갑자기 영어로 HR 담당자와 면접을 진행했다. 질문 내용은 지금까지 면접이 어땠는지, 회사에 대해 어떤 것들을 알게 되었는지, 추구하는 조직문화는 어떠한 것인지, 받고 싶은 연봉은 어느 정도인지 등이었다. 간단하게 각 내용에 대해 답변을 하고 면접이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여러 번 가벼운 주제로 여러 면접관을 만나는 것이 서로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것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겼다.

 

5차 면접

5차 면접은 지사장/대표급의 면접이었다. 질문은 대부분 내가 알고 있는 개념에 대해서 쉽게 설명하는지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개념을 구조화하고 이해해서 설명하는 능력을 보고자 했다. 첫 번째 질문은 바로 내가 전 직장에서 가장 잊고 싶어 하던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설마 이게 질문으로 나올까 싶었던 내용이었고, 그래서 그 질문을 듣자마자 이 면접 진짜로 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올 확률도 낮고 준비하기 싫었던 내용이라 실제로 준비를 안 했다. 

그 뒤의 질문은 자세하게 기억이 나진 않는다. 전 직장의 사업 구조에 대해 설명해보라는 질문이 하나 있었던 것 같다. 캘린더에 한 시간으로 예정되어 있던 면접은 30분 만에 끝났고, 이미 불합격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수록, 불합격 이메일에 감정이 담긴다

이쯤 되면, 팀장/인사팀부터 대표급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만났기에, 불합격 메일에 일종의 감정이 담긴다.

 I want to personally thank you for your interest in ABC company and for taking the time to speak with us

 

나머지 메일 내용은 대략 이렇다. 모두가 너와의 대화를 정말 즐거워했지만, 다른 후보자와 면접을 진행하기로 했다. 최고의 소식은 아니란 걸 알지만, 우린 너의 경험이 정말 인상적이었고, 앞으로도 더 잘 맞는 포지션이 있다면 계속해서 연락을 주겠다. 만약 그동안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해. 

 

3주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면접을 보고 최종 불합격한 소감

무려 거의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한 회사를 위해 집중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면접을 보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다. 5차 면접까지 봤기에,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최종 합격'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마음은 더욱 아팠다. 눈물도 찔끔 흘렸다. 5차까지 가는 동안 일부러 다른 회사에도 이력서를 안 써서 발등에 불만 떨어졌다. 결국, 빠르게 태세를 전환해서 하루에 한 개씩 이력서를 쓰자는 모토를 만들어 그렇게 살았다. 안그래도 코로나때문에 구직이 쉽지 않은데, 이젠 더 이상 이력서를 넣을 힘도 없어지는 것만 같다. 

최종합격, 그거 언젠가 되긴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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