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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회사들은 <직급>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직급이 있는 이유는 일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함에 있다. 경험이 없는 신입부터 10년 이상의 경력자 까지, 서로의 경험과 효율을 체계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직급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직급체계는 과연 디자이너들에게 어떻게 적용이 될까? 아래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디자이너란 직업은 절대 수직적인 체계로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왜 많은 디자이너들이 어떤 이유 때문으로 회사생활을 힘들어하는지 까지 적어내 보려 한다.



01. 본인이 살아온 방식대로 타인에게 행하기 때문에.
디자인이란 직종이 결과를 숫자로 결론지을 수 있는 정답이 있는 일이라면 직급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은 누구 한 명의 말 한마디로 인해, 해석으로 인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이번 주의 야근 여부가 결정된다. 먼저 나는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디자인도 철저한 기획이 있어야 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예상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디자인 기획이자 디자인 프로세스이다. 하지만 90%의 수많은 (디자인을 하는 회사의) 대표자와 클라이언트, 심지어 디자이너들 조차 이런 프로세스를 간과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선임자들은 이러한 프로세스를 알려주지 않았고, 심지어 대학에서조차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디자이너에게 예상된 디자인이 아닌 <잘 뽑힐 디자인>을 기대한다. 예를 들면 내가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모든 걸 그려낼 거라는 예상 같은 것 말이다. 보통 이러한 기대는 그 회사의 팀장이나 대표자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하고 있고, 그들은 자신의 기대에서 벗어난 결과물을 보면 디자이너에게 말한다. 

"(팔짱 혹은 뒷짐을 지고) 아.. 이런 느낌이 아닌데 다시 해봐(명령)"
"좀 더 임팩트 있고, 화려하게, 느낌 있게 알지? 다시 해봐"

또한, 디자인이라는 건 필연적으로 수정이 있을 수밖에 없고 만약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면 의사소통을 통해 조율해가며 맞춰가야 한다. 그런데 뭐 하나라도 질문을 하려고 하면, 의도한 내용에서 단 한 개를 놓치기라도 하면, 평소엔 안 하던 오탈자 실수를 한 번이라도 하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디자이너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다면 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얘기한다. (가스 라이팅의 일종)

"내가 쭉 지켜봤는데, OO 씨는 늘 이런 실수를 하더라? 폰트 이렇게 할 거야?"
"널 믿었던 내가 실수였던 것 같다. 다음부터 실망시키지 마"

실력이 좋은 디자이너는 <잘 뽑아내는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라 <예상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이다. (물론 그 예상됨이라 하면, 기획자와 협의된 예상이어야 한다.) 반대로 실력이 안 좋은 디자이너는 기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된 디자인을 못하는 디자이너이다. 결론은, 디자인을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없고, 또 그렇게 접근해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마인드로 디자인을 대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본인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단시간 내에 이루어졌고 개인의 여유 있는 삶보다는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중시되었던 사회문화였다. 그로 인해 상명하복의 문화가 거부감 없이 이어져 왔고, 아마 몇몇은 부당함을 느꼈겠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문화에 효율성을 따질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문화는 자그마치 100년 가까이 전해 전해져 내려져 왔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군대가 의무이다 보니 그 공간과 환경에서 살아온 수많은 기성세대들이 이루어온 환경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크리에이터 직군들은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해왔던 시간만큼 다시 투자해야 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대게 본인이 살아온 방식대로 타인에게 행하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며, 이것을 고치려 하지 않고 뭐가 맞고 틀린 건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보니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대로 가스타이팅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02. 개인의 감정을 일할 때 섞지 마세요.
수직문화가 일상이었던 시절을 지내온 사람들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여유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회사에서는 내가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상상해보니 숨이 막혀서 어지러운 느낌이다. 디자인을 위한 일이 아닌 팀장과 대표의 눈치를 봐야 하고, 나의 행동과 의도가 분명하고 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 한마디와 기분에 따라 나는 순식간에 잘못된 사람으로 결론지어진다. 그것에 대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그 순간 자신의 눈에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만족하기 위한 디자인에 도달하기 위한 피드백도 매우 잘못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짜증과 귀찮음이 반반 섞인 말투로 디자이너의 의자 뒤에서 팔짱을 끼고 툭 던진다.
- 그저 자신의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 "별론데?" "다시 해봐"
- 이 디자인은 이런 목적이라 이렇게 해야 하고, 내용이 많아서 폰트를 못 키워요 → "변명이 왜 이렇게 많아?"
- 서로 생각한 의도가 단지 달랐을 뿐인데 → "같은 실수 반복하지 마. 나 실망시키지 마"
- 생각보다 이런 경우는 너무 많이 존재하고, 위의 예시는 신입시절 모두 실제로 들었던 말들이다.


매번 자간을 -50으로 하다가 단 한번 다르게 조정했다고 가정해보자. 디자이너라면 이해하겠지만 비 디자이너라면 어려울 테니 다른 예시를 든다면, 매번 화려한 디자인을 하다가 미니멀한 디자인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제대로 된 피드백이라면 평소에는 이렇게 했는데 이번엔 왜 그렇게 했는지, 혹시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 묻고 서로 의견이 다르다면 상호 조율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디자인에 대한 의도조차 묻지 않고 디자이너를 믿지 못한다는 뉘앙스로 얘기한다면? 디자인을 올바르게 바라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감정을 섞어서 얘기한다면? 그야말로 아주 잘못된 피드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반복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디자인을 맞게 했는지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평가로도 이루어진다. 그 평가에 대한 근거는 또다시 자신에 마음에 들지 않는 디자인이고 돌아오는 피드백은 귀찮음과 짜증이 섞인 성의 없는 피드백이다. 만약 이와 같은 대화들이 한두 번만 반복된다면 일을 하기도 전에 숨이 막혀서 질식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일 때문이 아닌, 사람 때문에 힘들어야 할 상황이 과연 맞는 건가?


03. 디자이너들에게 필요한 건 예의와 존중이다.
위와 같은 무례한 피드백을 피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논리적인 디자인을 해야 한다. 전문적인 디자인 회사라면 몰라도 디자인 기획을 거치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고, 또 그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예의와 존중에 기반한 마음가짐이다. 수직적인 문화에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을 수 없다. 디자이너나 기획자 등 크리에이티브한 창작활동을 하는 직무라면 피드백이 오고 가는 건 당연한 과정이고, 이 과정 속에서 짜증과 귀찮음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는 직급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같은 사람과 디자이너라고 인정을 할 때 비로소 예의와 존중이 생기는 것이다. 수평적 직급체계인 회사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는 당연하다. *외국에서 디자인을 오래 하고 온 친구가 말했다. "미국에서는 서로 수평적인 구조 아래 디자인을 한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자기의 잣대로 수정하라는 명령은 오직 한국에서만 이뤄지는 업무방식이다"




디자이너는, 나이가 몇이든 같은 디자이너라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멋있는 직업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디자이너만이 멋진 디자이너이다.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취업계로 취직한 고등학생이어도, 나와의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이 나더라도, 그의 생각과 감성을 존중하는 게 진정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디자이너뿐 아니라 디자이너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감성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내 눈에는 이게 맞고, 네 생각은 틀렸어" "내 눈이 정답이야 내 말 들어"라고 한다면 아마 당신은 디자이너와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디자이너와 소통해야 한다면? 기획에 어긋나는 디자인이 발생하더라도 무작정 개인의 잣대와 기준을 내세우기 전에 원활한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길러보길 바란다. 직급이 높다는 뜻은, 자신이 살아왔던 배경을 강요하고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부하직원에게 맘대로 표출할 권리를 뜻하는 게 아니다. 회사는 같이 일을 수행해 나가야 하는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는 동료이지 상명하복 관계가 아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례하고 비합리적인 언행을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길 바란다.


머리끄덩이를 잡아끄는 것과, 손을 잡고 나아가는 것의 차이를 인지하고 '나는 어떤 경우의 사람이었는지' 
고민해보고 반성과 다짐을 하며 살아가는 멋진 디자이너(디자이너와 소통하는 사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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