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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사람은 무역업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고 묻는다면 한 마디로 귀차니즘 + 고집쟁이다.
활동적이지 않고 여러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을 싫어하며 모든 행동이 귀찮다.
귀찮음이 무역이랑 무슨 상관이냐 묻는다면?

무역에서 수출은 나 혼자 잘한다고 일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제품 하나를 수입자가 원하는 날짜에 잘 받을 수 있도록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한다.
물건을 수출하기 위해서 소통하게 되는 사람들은 회사 내부적으로는 사장님, 부장님 그리고 생산팀 과장님 출고팀 직원이 있다.
제품 개발이 필요한 경우는 품질관리팀 직원이 추가된다.
회사 외부적으로는 포워딩, 운송사, 관세사가 있다.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하고 여러 사람과 활동하고 의견을 맞추는 것을 좋아한 적이 없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을 하려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또 나 혼자 일을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할 때도 있다.

자기소개서에 성격의 장점과 단점을 쓰라는 이유를 알겠다. 어떤 일을 하는지와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의 조합은 꽤 큰 요인이다.

보통 협업이라 하는 것은 누구 하나만 잘한다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다.
대학교 때 조별과제를 해 보면 알겠지만 회사생활은 매일이 조별과제다.
그중 누구 하나라도 삐그덕거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타인의 일정, 상황을 다 고려해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을 신경 쓰기가 귀찮다. 그래서 나는 무역업이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점은 고집 있는 나의 성격이다. 무역업은 변동과 돌발상황이 많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지만 무역은 좀 심하다.
의도치 않게 배가 지연돼서 일정이 밀린다거나 생산하다가 기계의 문제로 생산이 중단된다거나 제품의 샘플과 본품이 달라서 바이어로부터 컴플레인을 받게 된다거나 내부 사정으로 납기일을 맞출 수 없는데 바이어가 재촉할 때와 같이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직면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나는 고집이 있는 성격이라 나의 의지와 나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무역업은 변화가 많고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들이 생기기 때문에 내 고집대로 처리할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영업이나 무역을 한다고 하면 멋있고 부럽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제로 바이어가 여러 가지로 요구하는 상황들을 내부와 외부 사람들에게 제발 해 달라고 두 손을 빌빌 기는 그저 관리자에 불과하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해주는 마법사가 돼야 한다.

비록 내가 하는 업무는 다른 회사의 해외영업 업무에 비교하면 강도가 높지 않지만,
제 때에 바이어가 원하는 날짜에 출고시키고 원하는 물건으로 개발해서 재탄생시키고,
원하는 자료를 주고, 원하는 가격을 맞춰주고, 없는 배를 잡아서 부킹 하고, 회사의 영업 매출을 높이는 것은 다른 회사와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제2외국어를 전공하고 그 언어를 활용하는 직업을 갖고 싶어서 무역업을 선택했다.
그러나 실제로 회사에서 제2외국어를 사용하는 일보다 영어로 소통을 더 많이 한다.
왜냐하면 내가 제2외국어로 소통해도, 내가 아닌 다른 직원들이 제2외국어를 모르면 업무 공유가 안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 영업하려면 영어도 잘해야 되고 제2외국어도 잘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사실 제2외국어를 쓰는 일이 거의 없다.

정말 이 회사에서 제2외국어가 아니면 소통이 안 되는 바이어라면 모를까,
그 바이어도 해외영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 영어만 잘하면 되나? 그런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영어만 잘하면 안 된다.
우리가 한국어만 잘한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영어는 소통의 수단 일 뿐이고,
일을 잘하는 비법이 아니다.

바이어와 네고 하는 능력, 일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능력, 타 부서와 협조를 요청하는 능숙함, 낯선 나라의 시장을 조사하기 위한 지식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영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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