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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3년 차 - 첫 번째 이야기 (https://www.superookie.com/contents/58c7880f8b129f6ddb5aed32)
원한다면, 기회는 꼭 찾아오기 마련이다.
상사가 직원의 ‘행복’에 대해 고민을 할 수도 있다.
이후, 오토데스크에서 영입된 새로운 마케팅 디렉터가 내 사수가 되었다. 여자분이지만 참 당차고, 추진력 있으며, 사람을 조물조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참 희한한 게, 이 분이 나에게 꽤 큰 관심을 가져주셨다. 난데없이. 이 전에 했던 내 리포트나 리서치 자료들을 살펴봤을 때, 본인이 느끼기에 나는 주어진 업무에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그 어느 MBA 인턴들 보다도 결과적으로 뛰어나다는 극찬을 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저 어리둥절할 뿐. 허허.. 난 충분히 뛰어나니까 그에 맡는 역할을 해보라며 여러 가지 캠페인들을 더 던져주었다. 각 종 리서치의 양도 굉장히 늘어났고, 아직 자동화가 안되어 있던 터라 Marketo로 수동적인 이메일 캠페인과 리즈 창출을 위한 이메일 캠페인, 뉴스레터 등도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생활코딩으로 HTML과 Javascript, CSS를 공부하고, Marketo와 익숙해지기 위해 씨름하기 시작했다. 또한, 인바운드/아웃바운드 리즈 창출/관리 로직도 직접 짜며, 세일즈 팀을 돕기도 하였다. 그렇게 순식간의 내 역할은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이후, 오토데스크에서 영입된 새로운 마케팅 디렉터가 내 사수가 되었다. 여자분이지만 참 당차고, 추진력 있으며, 사람을 조물조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참 희한한 게, 이 분이 나에게 꽤 큰 관심을 가져주셨다. 난데없이. 이 전에 했던 내 리포트나 리서치 자료들을 살펴봤을 때, 본인이 느끼기에 나는 주어진 업무에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그 어느 MBA 인턴들 보다도 결과적으로 뛰어나다는 극찬을 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저 어리둥절할 뿐. 허허.. 난 충분히 뛰어나니까 그에 맡는 역할을 해보라며 여러 가지 캠페인들을 더 던져주었다. 각 종 리서치의 양도 굉장히 늘어났고, 아직 자동화가 안되어 있던 터라 Marketo로 수동적인 이메일 캠페인과 리즈 창출을 위한 이메일 캠페인, 뉴스레터 등도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생활코딩으로 HTML과 Javascript, CSS를 공부하고, Marketo와 익숙해지기 위해 씨름하기 시작했다. 또한, 인바운드/아웃바운드 리즈 창출/관리 로직도 직접 짜며, 세일즈 팀을 돕기도 하였다. 그렇게 순식간의 내 역할은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볕이 좋았던 어느 오후, 디렉터가 같이 커피를 마시자고 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서 근처 건물 옥상으로 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기로 한 1:1 시간이었다. 이 시간은 내 무드에 따라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것을 하며 디렉터와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었다. 업무에 관한 전반적인 얘기와 피드백을 받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한테 남은 시간 동안 이 곳에서 무얼 하고 싶냐고 물어봤다. 서포팅해주는 것이 본인의 몫이라며. 나는 여기서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넓히고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곧바로 본인의 지인들을 소개시켜주겠다며 나는 네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 눈을 둘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후, 나는 Autodesk, Adobe, Cisco, Event Brite 등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좋은 식사까지 대접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이 조금 놀랍다. 마케팅 팀엔 B와 C라는 직원들이 더 있었는데, 네가 생각하기에 이들이 지금 일하면서 행복한 것 같냐는 물음이었다. 행복? 직장 상사가 직원들의 행복을 고려해준다는 것은 어색하면서도 놀라운 것이었다. 한국에선 괴롭히고 욕하지만 않아도 꽤 괜찮은 상사라고 평을 듣곤 하니까. 얘기로 돌아가면, 그것도 외국에서 온 인턴인 나에게 그런 걸 묻는 건 객관적으로 그들의 행복도를 살펴보고 싶어서 물은 듯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요즘 일의 방향성에 대해 혼돈스러워하는 것 같아 보인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아직까지 팀 해피아워도 가진 적도 없었고, 모든 것이 정신없이만 돌아갔기 때문에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떡했으면 좋겠냐고 해서, 일단 해피아워를 한번 갖자 했더니, 그다음 주에 곧바로 우린 다 같이 점심으로 엠바카데로 역 근처에 있는 타코 바에 갔다. 디렉터가 직원들의 ‘행복’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실제로 돕기 위해 빠른 ‘실행력’을 보여준다는 것은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많은 큰 기업에서는 조직을 우선시하고, 스타트업에서는 성장만을 쫓는 경향이 있다. 이 모두도 회사라는 공동체를 일궈가는 데 매우 중요한 지표 혹은 가치지만, 그래도 회사는 지금 우리의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공간이자 가장 오랜 시간 마주하는 동료, 사람과 함께 하는 곳이다. 이 곳이 즐거워야 하고, 함께 행복하게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은 단순한 성장의 가치를 넘어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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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유로운 업무 환경이 필요한 거야?
사내 문화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업무 시간은 기본 9-5시였고, 점심시간은 보통 30분에 오전, 오후 10분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내가 알기로 이게 캘리포니아 법적 근무 시간이다. 그러나 대게 본인의 업무에 따라 유동적인 시간을 갖는다. 오피스가 Bay Area의 업무 중심지인 Financial District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9시 출근이지만, 보통 트래픽에 따라 9시 ~ 10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을 한다. (샌프란시스코는 비싼 집값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근교에 떨어져 산다.) 점심시간은 보통 30분으로, 일을 하면서 샌드위치나 샐러드로 점심을 때우기도 하고, 아니면 싸온 음식을 데워 먹거나 근처에서 간단한 음식을 사 와서 먹기도 한다. 그치만 나는 보통 1시간가량 점심시간을 가졌다. Financial District에는 각 건물마다 개방된 퍼블릭 플레이스가 있다. 빌딩 속 정원(?) 같은 곳이 꽤 많다. 날이 좋은 때에는 이런 곳에 가서 샐러드를 먹고, 노래를 듣던가 산책을 한다. 페리 빌딩까지 한 바퀴 돌다 보면 1시간가량 시간을 보냈다. 같은 시간을 보내도 전체적인 지역 분위기와 날씨 등이 여유로움을 자아내는 것 같다. 퇴근은 기본 5시였지만, 각자의 업무에 따라 그전에 오피스를 나가기도 하고, 아니면 더 늦게까지 일을 하기도 한다.(보통은 일이 많으면 집에 가서 하지 아주 늦은 시간까지 오피스에 남아 있지 않는다.) 또한, 본인의 무드나 스케줄에 따라 WFH(Work from Home)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 회사는 보통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약간 다른 인식은 몸이 안 좋아 WFH을 하기보다는 컨디션이 안 좋으면 그냥 Sick day를 사용한다. 아프면 일을 하지 말고, 몸을 챙겨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이런 모든 것들은 개인의 자유에 방점을 찍은 듯하다. 개인이 최상의 업무 역량을 뽐낼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늘 얘기하듯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런 환경 속에서 결과로 나의 역할과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무섭다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개인의 자유와 회사에 대한 책임을 가장 합리적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반대로,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테니까.
인상적이었던 문화 중에 단연 ‘회의 문화’가 기억에 남는다. 회의는 단순이 지시와 보고를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의견을 끄집어내고, 방향을 함께 만들어가며, 그것을 위한 실행 방안과 타임라인을 짜는 시간이었다. 물론 보고하고 피드백받는 All-hands 자리가 있긴 했지만, 그 수 많았던 대부분의 미팅들은 끄집어내고, 액션 플랜을 짜는 시간이었다. 그림도 그려가고, 스티커도 붙이고, 퍼넬도 그려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을 끄집어내었다. 업무에 따라 인턴인 내가 주도하는 시간도 있었다.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다 함께 방향성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함께 머리를 맞댄 곳에서 무언가가 나와야 공유가 되고, 팀 업이 된다. 또한, 그것에 따른 액션 플랜 즉, 실행력이 항상 뒤따랐다. 타임라인을 정하고,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보여주었다. 그러니 방향성 있게 일이 진행되었다. 점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가시적으로 보였다. 디렉터는 그 타임라인을 확실하게 관리해주려고 노력을 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팀원들은 거기에 또한 책임감을 가지기도 했고. All-hand 미팅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진부한 전체 회의에서 탈피하기 위해 스탠딩 회의를 선택했다. 일어나서 좀 더 활동적으로 미팅을 하자는 취지였다. 새로운 시도는 늘 장, 단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난 그런 시도들이 참 좋았다. 어떤 분은 랩으로 자신의 업무를 표현하기도 했고, 좋은 성과를 거두면 우린 돌아가며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했다. Proactive, Agile이라는 키워드는 스타트업에서 인기 있는 단어들이다. 이를 팀원들에게 내재화하고, 보여주기 위한 이런 시도들은 좋은 문화라고 생각했다."}]}">인상적이었던 문화 중에 단연 '회의 문화'가 기억에 남는다. 회의는 단순이 지시와 보고를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의견을 끄집어내고, 방향을 함께 만들어가며, 그것을 위한 실행 방안과 타임라인을 짜는 시간이었다. 물론 보고하고 피드백받는 All-hands 자리가 있긴 했지만, 그 수 많았던 대부분의 미팅들은 끄집어내고, 액션 플랜을 짜는 시간이었다. 그림도 그려가고, 스티커도 붙이고, 퍼넬도 그려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을 끄집어내었다. 업무에 따라 인턴인 내가 주도하는 시간도 있었다.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다 함께 방향성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함께 머리를 맞댄 곳에서 무언가가 나와야 공유가 되고, 팀 업이 된다. 또한, 그것에 따른 액션 플랜 즉, 실행력이 항상 뒤따랐다. 타임라인을 정하고,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보여주었다. 그러니 방향성 있게 일이 진행되었다. 점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가시적으로 보였다. 디렉터는 그 타임라인을 확실하게 관리해주려고 노력을 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팀원들은 거기에 또한 책임감을 가지기도 했고. All-hand 미팅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진부한 전체 회의에서 탈피하기 위해 스탠딩 회의를 선택했다. 일어나서 좀 더 활동적으로 미팅을 하자는 취지였다. 새로운 시도는 늘 장, 단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난 그런 시도들이 참 좋았다. 어떤 분은 랩으로 자신의 업무를 표현하기도 했고, 좋은 성과를 거두면 우린 돌아가며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했다. Proactive, Agile이라는 키워드는 스타트업에서 인기 있는 단어들이다. 이를 팀원들에게 내재화하고, 보여주기 위한 이런 시도들은 좋은 문화라고 생각했다.
Excuse me의 생활화
끝으로 영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처음에 굉장히 바보 같았다. 영어로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크게 걱정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비즈니스는 처음이었다. 그것보다 처음엔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 영어로 토론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대화에 끼어야 하는데 초반엔 알아듣지도 못하고, 내뱉지도 못하니 스스로가 굉장히 멍청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처음에 누가 괜찮다고 격려라도 해주었다면 조금 나았을 텐데, 그땐 내 편이랄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계속 주눅만 들어갔다. 용어에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Leverage와 같은 단어는 비즈니스에서 이렇게 쓰이는지 처음 알기도 하고, FYI, OOO, APT 같은 약어들은 나올 때마다 매번 검색해봐야 했다. 처음엔 정말 바보가 따로 없었다. 그런 나의 슬럼프(?)는 나를 격려해주는 디렉터를 만나고, 회사에 친구를 사귀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더불어, 주어진 업무에 대한 결과로 보여주면서, 자신감은 더 붙어갔다. "}]}">끝으로 영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처음에 굉장히 바보 같았다. 영어로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크게 걱정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비즈니스는 처음이었다. 그것보다 처음엔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 영어로 토론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대화에 끼어야 하는데 초반엔 알아듣지도 못하고, 내뱉지도 못하니 스스로가 굉장히 멍청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처음에 누가 괜찮다고 격려라도 해주었다면 조금 나았을 텐데, 그땐 내 편이랄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계속 주눅만 들어갔다. 용어에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Leverage와 같은 단어는 비즈니스에서 이렇게 쓰이는지 처음 알기도 하고, FYI, OOO, APT 같은 약어들은 나올 때마다 매번 검색해봐야 했다. 처음엔 정말 바보가 따로 없었다. 그런 나의 슬럼프(?)는 나를 격려해주는 디렉터를 만나고, 회사에 친구를 사귀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더불어, 주어진 업무에 대한 결과로 보여주면서, 자신감은 더 붙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노력하기 시작했다. Excuse me를 입에 달고 살면서 이메일이나 미팅에서 모르는 표현이 나오면 적어두었다 따로 물어보거나 찾아보기도 하면서 리스트업을 해나갔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쌓이면서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모르면 물어봐야 한다. 배우려고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봐야 나는 성장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물어볼 수는 없다.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잘 알아들으려고 노력하고, 내가 혹은 회사나 업무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들을 정리하고 숙지해가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 있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런 생활 끝에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곳에서 얻은 큰 교훈들은 “내가 만약 스타트업 대표라면”이라는 관점에서 정리가 될 것 같다. 내가 만약 스타트업 대표라면, 어떻게 회사를 꾸려나가야 하는지에 관해 업무적으로, 문화적으로 ‘다른’ 혹은 ‘앞서간’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고작 인턴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최대한 인턴이라는 위치를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인턴이기에 조금 조직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조직을 바라볼 수 있고, 업무를 배워볼 수가 있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재밌고 즐거웠던 경험이었으며 내 관점은 분명히 조금 더 넓어질 수 있었고, 인생의 선택지가 넓어진 생각이 들었다. 그치만 나는 아직 학교를 졸업 못했기에, 또한 학교를 봄학기에만 돌아가야 하는 이상한 상황에 놓여있었기에 다음 스텝으로 또다시 인턴을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내 커리어의 키워드를 조금 더 분명히 하며 인턴을 지원하였다.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보면서 디지털 마케팅 플랫폼을 가진 회사들에 관심을 가졌다. 앞서 말한 Salesforce와 Marketo 등 이미 미국에서는 상용화된 마케팅 플랫폼을 보면서, 이 곳에 많은 돈과 인력이 쏠리는 것을 보았다. Google과 Facebook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이런 기술적으로 마케팅을 지원해주는 분야를 경험하고 싶었다. 또한, 나에게 글로벌이라는 키워드도 따라붙게 되었다. 유럽에서 생활을 해봤고, 미국에서 일도 해봤다. 내가 일하는 곳이 글로벌 환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곳이었으면 했다.
이와 관련된 회사들을 알아보던 중, 운이 좋게도 귀국하자마자 위에서 언급한 키워들에 적합한 또 다른 A라는 곳에서 인턴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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