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글, 영상 등 요즘 우리들의 의사소통 수단 중 나는 말의 울림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개인적으로나 혹은 여럿이 주고받는 대화는 우리의 다양한 감각(시각, 청각, 후각, 때로는 촉각까지)을 자극하며 가장 인상적인 울림을 남기게 된다. 어쩌면 가장 쉬운 의사소통 방식이 어떤 경우엔 가장 강력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믿는다. 물론 매력도 측면에선 글이 조금 더 섹시하긴 하다.
모든 대화들이 다 기억에 남을 수는 없지만, 울림이 있던 그때의 나는 그 대화를 통해 힘을 얻고 새로운 영감을 받았다는 그 장면을 어느 한편에 남겨 두고, 가끔 필요할 때 꺼내어 되새겨 본다. 가령, 세일즈 피칭을 함께 다니던 파트너 분과 택시에서 잠깐잠깐 나누던 대화들이 나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같이 테헤란로를 걸으며 지난 경험들과 일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던 누군가의 조언이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이끌어 주기도 했다. 내 결심이 흔들리거나 할 경우, 이런 장면들을 한 번씩 꺼내어 보고 다시 한번 그때의 힘에 기대어 보기도 한다.
대화는 다양한 감각을 자극한다.
그러나 콕 박히는 대화들이 꼭 모두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 가시가 돋친 말들은 그 어느 의사소통 수단들 보다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말만큼 아픈 것도 없다. 돌이켜보면, 나도 지금까지(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더한다면) 많은 이들에게 대화 속에 가시 돋친 말들로 상처를 주었을 수 있다.
말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의식적으로 말에 신경을 쓰려고 노력한다. 존중의 호칭으로 '님'을 사용하는 것도, 대화에서 내 말보다 상대의 말을 먼저 들으려고 하는 노력도 어느 정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글로 한번 정리해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내가 말로 표현하는 것들에 나도 모르게 박혀 있는 가시들을 최대한 둥글둥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최근 여운을 남겨 주었던 몇몇 대화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상대방들은 큰 뜻 없이 해주었던 이야기 었을 텐데 우연히 그때의 내 상황과 맞닿으면서 그것들은 내 책장에 쏙 꽂히고, 한 번씩 꺼내보게 되는 즐겨찾기가 되었다.
나한테 좋은 건 어느 누군가에게도 좋은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나와 비교하게 돼요."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새롭게 주어진 주변 환경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꾸준히 나름대로 체력 관리도 하고 휴식을 취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두 달 후 결국 난 병이 났다. 균형이 잡혀있던 생활에서 블랙홀 같은 환경에 오니 나도 모르게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던 듯했다.
환경 때문이겠어니 싶었으나 가장 큰 이유는 김치찌개 집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나누던 대화를 돌이켜보며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 방문했을 때 김치찌개 집에서 다른 분들과 점심식사를 하게 됐다. 새로운 회사의 소회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던 와중에 본인에게 새로운 회사에서의 힘든 점 중 하나는 이 전 회사에서의 나와 계속 비교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전에 내가 익숙했던 것들, 방식, 효율, 퍼포먼스 등을 따져보았을 때 난 이만큼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인데 그때에 비해 지금의 나는 답답하다는 이야기였다. 난 이 말에 크게 공감했다. 지난 몇 주간이 왜 그리 피곤했는지 날 재촉하고, 에너지를 소모시켰던 건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구나를 깨달았다.
짧았지만 지난 회사에서 처음에 겪어야 될 허우적거림을 어느 정도 겪고 나서 업계에 대한 이해도 넓혀가고, 어느 정도 나만의 일하는 방식을 찾아가던 상황에서 나는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기준을 이 전 회사를 나오던 시점의 나로 잡고 새 회사에서 나를 맞춰가려다 보니 삐걱거림이 생기게 되었다.
삐걱거림은 조바심으로 이어지기도 하면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만 키우게 되었다. 이 말을 곱씹으면서 한결 마음이 편해진 건 지금 나는 앞에 배우고 해나가야 할 것들을 차근차근 풀어가고, 현재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기도 벅차다는 관점으로 바꾸고 조바심을 조금은 내려놓게 되으면서 시작되었다. 어긋나던 것들을 지금은 나름대로 하나씩 잘 끼워맞춰나가고있다.
어제와 오늘은 별개의 시간이다. 삐걱거리지말고 하나씩 현재에 맞는 페이스를 찾아나가면 된다.
주변에서 찾는 아웃라이어
지난 연말 이전에 인턴을 같이 했던 분들과 소소한 자리를 갖게 되었다.
지금은 다들 멋진 곳에서 자기 길을 찾아나가면서 오랜만에 모이게 되니 좋은 이야깃거리들을 들고 오게 된다. 어떡하면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한 분이 자신이 회사에서 존경하는 분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세세하게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쓸 수 없기에) 요약하자면, 사내에서 힘겨워하는 B2B 세일즈 건인 A를 따내기 위해 A와 관계를 맺고, 상황을 만들며, 작은 성취를 함께 이루면서 이 과정들을 통해 클라이언트가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전략에 관한 얘기였다. 나한테는 굉장히 큰 범주의 이야기였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꼈던 점은 첫 번째로 세일즈에서 Think outside the box란 이런 것이 될 수 있겠구나랑 두 번째는 나한테 영감을 주고 존경하는 분들은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주변에도 무수히 많을 수도 있겠구나였다. 세일즈가 단순히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일이 아니라 관계 설정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으며, 지금 나한테 신이 나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분은 진심에서 이 이야기와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부터 배워나가고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대단한 분보다 그 대단한 분을 발견하고 내 것으로 만든 이 분도 멋져 보였다.
내 주변에도 대단한 분들이 많다. 내가 눈을 뜨면 내 주변 모든 이들로부터 이들의 생각, 방식, 태도 등에 대해 충분히 영감을 받고 배울 수 있다. 아웃라이어는 바로 내 주변에 있다.
러닝, 유연함 그리고 겸손
어느 리크루팅 관련 행사에 오신 한 분이 우린 이런 분을 찾고 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셨었다.
러닝, 유연함 그리고 겸손 이 세 가지로 정리되었던 이야기였는데, 나중에 이 분과 인터뷰를 보면서 이 키워드들이 인상적이었기에 이 이야기를 좀 더 나눌 수 있었다. 내가 이해하기론 원래 잘하는 사람보다 새로운 것들을 찾아나가고, 학습해나가는 러닝 커브를 그려나갈 수 있는 사람이자 (Resilience라는 단어로 표현하셨는데) 탄력적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겸손한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거 같았다.
나는 이 세 속성이 그동안 내가 찾고자 했던 바로 그 키워드들 같았다.
세상에 정말 똑똑하고 대단한 분들이 많이 있다. 똑똑함 자체로도 지난 학창 시절동안 얼마나 대단할 수 있는지 느껴왔다. 우린 그런 사회에서 살아왔으니까. 그러나 러닝에 특출날 수 있어도, 유연한 대응 능력, 폭풍이 몰아치고지나가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회복력은 또 다른 범주의 능력같다. 게다가 이처럼 대단한 능력자가 타인을 존중하는 겸손함까지 지니기란 정말...
나는 이 키워드들을 내 지표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일을 하면서 내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사람은 이런 배움에 적극적이고, 자기를 다스리고 스스로를 동기부여시킬줄 알면서 감사할줄 알고 겸손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고자 한다.
인터뷰였음에도 나는 꽤 오랜시간 이분과 대화를 나누고 배움을 얻고 나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대화들을 나눴었지만 앞으로 나는 또 새로운 분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대화들을 나누면서 내가 몰랐던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조언보다 대화가 좋은 이유는 능동적이라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예상하지 못했던 깨달음이 주는 효용이 훨씬 오래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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