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건물과 아파트, 원룸들로 숨 쉴 틈 없는 서울 살이도 이제 10년 차다.
그 10년 동안 군 복무로, 스웨덴 미국 등지에서 생활하며 떠나 있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나에게 서울은 분명 고향보다 훨씬 익숙한 곳이 되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듯, 학창 시절 서울 살이에 대한 꿈을 키우며 마침내 희망 가득 서울 유학길에 올랐던 시절도 떠오르고, 도시 곳곳에 남겨진 추억들은 이 곳에서의 나의 삶이 그만큼 열정적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희망과 열정은 열심이라는 단어로 귀결되었다.
서울은 무언가가 쉴 틈없이 거듭되고, 계속되어야 하는 공간이었기에 끊임없는 연속성 속에 정말 열심히 살았다. 노는 것도 포함해서.
학생은 대학에 가기 위해, 대학생은 취업을 위해, 직장인은 결혼을 위해, 부모는 자녀를 위해 그렇게 다들 바쁘게 살아간다. 간혹 주어지는 한가한 순간을 견디지 못해 그 작은 쉬는 틈도 쪼개어 우리는 무언가 '의미 있는 행위'를 계속해나간다. 계획적으로 정해진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고, 커리어의 점프를 위해 학원에 다니며 심지어 불금이라는 단어가 생겨나며 노는 것도 열심히, 무조건 꼭 해야 하는 일처럼 되어 버렸다. 특히, 서울은 희망과 열정을 '열심히 보여주어야만' 인정해주는 도시라는 느낌이 들곤 한다.
삶을 바라보는 다른 프레임을 경험하기 위해 떠났던 스웨덴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은 심심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3시면 어두운 밤이 찾아오는 북유럽의 겨울을 지내본 이들이라면 집 안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의미를 가지는 지 알 수 있을 거다. 먹고 노는 문화가 발달한 우리와는 다르게 주로 집 안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문화로 친구들과 같이 저녁을 해 먹고, 맥주를 마시고, 기타 치며 노는 저녁 시간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경험했던 시간이었다. 때론 펍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나는 주로 그때의 따뜻함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스웨덴 웁살라, 자전거를 타고 기숙사로 가던 길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생활은 가족과 함께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저녁 식사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의 효용을 알려주었다. 스웨덴에서는 친구들과 함께였다면, 이 곳에서는 같이 사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 시간이있었다. 풍성했던 저녁 식탁엔 온 가족이 둘러앉았고, 언덕 위에 위치한 집에선 저무는 해와 사라져 가는 해무를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고, 농구 게임이나 영화를 함께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삶의 템포를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었고, 매일 밤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San Francisco 근교 Daly City에 위치했던 내가 머물던 집에서의 저녁
저녁이 있는 삶이란?
이런 삶에 대한 경험들이 나를 서울에서도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게끔 만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저무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집에서 가족 혹은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삶이라고 대답하겠지 싶다. 해가 뜨고 저무는 자연의 순리는 우리가 하루를 온전히 살고 마무리 짓으라는 지표와도 같다. 떠오르는 해와 함께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고, 머무는 해를 바라보며 가족 혹은 친구와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만큼 온전한 하루는 없다고 믿는다. 자기 계발을 위한 여가 시간이, 이른 퇴근 시간이 결코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또 다른 소모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한 저녁을 보내고 싶고, 저녁과 함께 마무리 짓는 일상의 비연속성이 우리에게 삶의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믿는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내가 정의한 저녁이 있는 삶을 온전하게 누리고 있지 못하다. 물리적으로 회사 일로 늦은 귀가가 이어지기도 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 저녁에 운동을 해야 하기도 하며, 결정적으로 내가 사는 곳에서는 해가 저무는 것을 볼 수 없다.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그런 광경을 볼 수 있는 집을 얻기 위해서이고, 가족을 꾸리고 싶은 이유는 그런 저녁을 함께 즐기고 싶어서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