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내 나이는 나를 소개할 때 내 직업도 같이 소개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겪어보기도 전에 이미 나의 직업에 내 이미지가 결정되고 그동안 내 삶이 어땠는지 증명한다. 나는 아직 아닌데, 아직 보여줄 게 없는 어른인데 세상은 시간이 되면 나에게 무언가 보여주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루는 삼촌이랑 엄마가 전화 통화하는 내용을 엿들은 적이 있었다. 삼촌이 엄마에게 “이제 은혜 돈 많이 벌어 놓았지?”라고 물어봤다. 20살부터 사회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삼촌은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저축해 놓은 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듯 싶었다. 엄마는 삼촌의 말에 대충 얼버부리며 “그러겠지”라고 대답했다. 창피했다. 아직 내 통장에는 삼촌에게 떳떳이 보여줄 만큼 돈이 있지 않았다.
나는 아닌데, 나는 아직 아닌데 이 세상은 내가 빨리 철들어서 무언가 해 놓길 바라는 것 같았다. 자신들도 마흔살이나 돼서 깨달은 진리를 막상 20대 초중반 아이들에게는 왜 모르냐고, 아직도 철 안 들었냐고 묻는다. 조금씩 왜 나이를 먹을수록 더 움추러 드는지 알 것 같았다. 친척 오빠들이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자주 친척 집에 놀러 오다가 어른만 되면 추석에도 친척 집에 발길을 딱 끝는지 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나는 아니라서 그렇다. 아직, 그들이 생각하는 어른이 아니라서. 당신이 기대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가기엔 나는 아직 한참 많이 느린 어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