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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상처에 아프고 실연에 무너진다. 이제 좀 익숙해지길 바랬는데, 어쩌면 익숙해지는 게 더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문장 중에 ‘나는 살면서 단 하루도 쉬운 적이 없었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래, 아무래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 역시 나이를 조금씩 먹어도 모든 것이 처음처럼 어려움 투성이었다. 

 

이제 백수를 그만두고 계획한 것들을 하나둘씩 시작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았다. 친구가 말하길, 요즘엔 시급이 계속 올라서 그런지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뭐 많은 걸 바라진 않고, 그냥 월급은 제때 꼬박꼬박 주며, 악덕 사장은 아니고 진상 손님이 하나도 없는 그런 곳이면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그런 곳은 이미 아르바이트생이 있을 거라고 웃으며 받아쳤다. 더 이상 나에게는 하나도 웃기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정말 구인구직 창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루 이틀 아르바이트 구해본 것도 아닌데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조건에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이건 시간이 괜찮다 하면 집에서 너무 멀고, 모든 조건이 다 괜찮은 것 같다 해서 전화해보면 이미 사람을 다 구했다고 말하니까 말이다.  

 

이력서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간단하게 내가 지금까지 뭘 했는지만 쓰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사실 이력서 쓰는 게 어떤 능력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나의 마음이 어려운 것 같다. 

 

이 작은 A4용지 안에 나의 능력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건 언제나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할 수 있다면 충분히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1년간의 백수생활로 인해 비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그 공백 기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더 답답했다. 

 

물론 내가 하는 건 간단한 아르바이트 정도라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나의 그 공백 기간을 바라보며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누가 뭐래도 나에겐 그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걸 알아주지는 못해도 속으로 한심하다며 혀를 끌끌 차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까지 모두 서류에 일일이 적어 놓을 수는 없는 노릇, 사실 사장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그거 역시 사장님의 상상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렵게 이력서를 다 쓰고 난 뒤에야 이제 정말 다시 현실로 뛰어들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솔직히 나에게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 익숙해질 거라고 기대하던 일들이 있었다. 면접을 보는 것도 그렇고, 사회생활에서 받는 상처나 인간관계에서의 회의감도 그중 하나였다. 

 

처음 상처받았을 때는 정말 화나고 마음이 아파도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받다 보면 언젠가는 담담해질 줄 알았다. 나중에는 “그래, 이 정도 받는 상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지. 뭘 이런 거 가지고 마음에 담아두나”라고 당당하게 말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나의 큰 오산이었다. 

 

여전히 쓴 말은 내 마음속에 비수를 꽂았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내가 남들보다 멘틀이 약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무조건 내 탓으로만 돌렸다. 언제나 내 눈에는 다른 사람들 모두가 힘든 것도 잘 참고 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 속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익숙하다’는 이 말에 뜻은 ‘이제는 익숙해서 다 괜찮다’라는 표현이 아니라, ‘그냥 꾹 참고 가야 하기에 억지로 익숙해져야만 한다’라는 표현이었다. 그건 엄연히 다른 이야기였다.     

 

누구든지 상처에 익숙한 어른은 없다. 아니, 무엇이든 꼭 경험해봤다고 해서 그렇게 모든 일이 기계처럼 익숙해져야 할 필요도 없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도, 새로운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도, 자주 겪는 연인 간의 이별조차도 우리는 아직 펑펑 눈물을 흘리고 주저앉고 싶을 만큼 아파할 자격이 있다. 

 

그런데 막상 남자 친구와 싸우고 집으로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으면 주위에서 “그동안 한두 번 싸운 것도 아닌데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렇게 울기까지 해”라고 말할 때가 있다. 물론 그 안에는 나를 위한 걱정과 속상함이 섞여 있는 문장이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순간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리 백번을 싸우고 싸워도 여전히 처음처럼 마음이 아픈데, 왜 이별마저도 몇 번 해보면 더 강해져야 하고 이런 감정에도 조금은 익숙해져야 하는 걸까. 어른이 되었다고 익숙해지는 일이 이 세상에 있긴 한 걸까? 하다 못해 사랑마저도 서툴면 안 되는 때가 오는 것 같아서 뭔가 더 마음이 아팠다. 

 

 

일은 오래 하면 어렵던 일도 금방 익숙해지고 능률도 오른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인생만큼은 나이를 경력처럼 조금씩 쌓아도 익숙해지지 않고 늘 미숙할 뿐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매일이 어렵고, 방황의 연속이었지만 이 또한 ‘아름다울 미’를 써서 미숙(美潚), 아름다운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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