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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어리니까 괜찮아요. 더 놀아도 괜찮아요. 용기도, 돈도 아직은 아끼고 싶지 않아요

 

 

어렸을 때 나는 한참 리즈로 방영했던 ‘1박 2일 1기’를 보며 여행을 꿈꿨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설렘, 그곳만에 특별한 음식,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까지도 나에게는 즐거워 보였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여행을 다니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어른이 된 후,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어떤 다짐을 했는지 잊고 사는 듯했다. 정신 차리고 다시 봤을 때 나는 마치 어렸을 적이 없었던 것처럼 하루를 살고 있었다. 처음부터 어른이었던 것처럼 아주 치열했다. 

 

나는 20살 때부터 대학을 가지 않고 돈을 벌었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대학 간 또래 친구들보다 벌어 놓은 돈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원래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많이 나가고, 없으면 없는 대로 나가는 법.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한다든가, 강남에 건물주가 된다든가,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이렇게 간간히 벌어선 부자가 되기는 글러보였다. 

 

물론 부자가 되기 위해서 사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라고 돈에 대한 욕심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처음엔 그래서 였던 것 같다. 내가 해외여행을 자꾸만 미루던 이유는 바로 돈이 없어서. 

 

여행은 내가 어렸을 때 막연하게 꿈꿨던 것과 많이 달라서 무언가 얻어지고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시간과 돈, 생각보다 그 이상 더 많은 걸 투자하고 내려놓아야만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버려야지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말로는 내가 해외여행, 해외여행 노래를 부르면서도 막상 가지 못했던 건 모아 놓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내려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 만난 22살에 아르바이트생 친구들은 자신이 돈 버는 이유가 오로지 여행을 다니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래서 1년 사이에 벌써 여러 번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이야기하며 설레 하던 친구들에 얼굴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부러웠지만 내심 아닌 척했다. 사람마다 모두 다 상황이 다르고 때는 다르니까 딱히 부러워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꽤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막연하게 그 친구들이 여행을 다녀왔다는 게 부러운 것이 아니었다. 나도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못하고 미루었던 일들을 누군가는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는 게 부러웠다. 여행을 갈 수 있는 용기가, 돈을 내려놓아도 얽매이지 않는 그 자유로움이, 여행을 갔다는 것 그 이상으로 부러웠다.

 

나는 내가 시간이 없고 돈이 없어서 비행기 표를 끊지 못했던 게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 얼마 없는 내 통장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한번에 다 비어지는 게 조금은 두려웠던 것 같다. 거기다가 평소에 길치인 나에게 낯선 해외여행은 설렘보다 두려움과 걱정이 늘 앞섰고, 혹시나 하는 나쁜 상상에 머뭇거리기만 잘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었다. 차라리 그럴 거면 아예 가고 싶다고 생각을 하지 말던가, 머릿속에서는 항상 여행 간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속으로는 ‘나도 언젠가..’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 막상 용기도 내지 못하고 돈을 잡고 있는 내 손도 선뜻 펴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는 게 그 순간 제일 한심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싫었던 건, 언젠가 용기 내지 못한 오늘을, 이 젊은 날을 나는 꼭 나중에 가서 후회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는게 가장 싫었다. 

 

나는 아직도 22살에 아르바이트생 친구들이 나에게 웃으며 말한 내용이 기억난다. “부모님은 벌어 놓은 돈으로 차라리 저축하라고 말해요. 하지만 저는 지금이 좋아요. 아직 젊으니까 미래를 걱정하는 것보다 더 놀고 싶어요. 어차피 돈은 평생 벌거잖아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놀아야죠.”

 

그래,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여행은 자기 선택이니 가도 좋고 안 가도 좋지만, 그것과 별개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하루 벌써부터 어떻게 하나 걱정하며 사는 것보다, 아직은 나이가 젊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나도 하고 싶은 걸 한개라도 더 해보자라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있어서는 내 통장이 비워지는 일에도 너무 겁내지 말아야 하며 무엇이든 처음 시작하는 낯섦에 걱정과 근심보다는 설렘과 감사로 가득해야 함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그게 여행이든, 어떤 일에 도전이든, 그걸 극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사실 요즘 20대, 어떻게 보면 책임감을 너무 많이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 안타깝다. 돈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벌써부터 우리에 자유를 늘 막고 있는 것 같고, 성공해서 가족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항상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나를 포함해 이 시대 같은 청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기를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아직은 젊으니까. 아직 어리고 빛나고, 충분히 시간과 기회도 주어져 있으니까. 

 

조금만 더 어깨에 무거운 책임감과 짐을 내려놓고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이 꽃, 저 꽃 여러 예쁜 꽃들을 많이 만나고 다녔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어렸을 때 한참 1박 2일을 보며 “나도 어른이 되면 맨날 맨날 저렇게 여행 다녀야지”라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그럴 때면 엄마는 “에휴, 너 그래서 철은 언제 들래?”라고 말했다. 이런 게 어른들이 말하는 철이라면 나, 괜히 들어버렸다. 아직은 미래에 대한 무거운 짐 대신 배낭의 짐을 어깨에 지며 걸어가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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