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머리를 비울 필요가 있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필요가. 근데 그게 참 어려운 사람도 있지
어른들은 가끔 나에게 “넌 아직 어려서 생각이 없어”라고 말할 때가 있다. 내가 아직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뜬구름 잡는 소리도 참 잘 한다며 했던 말이었다. 그럴 때면 난 아주 격렬하게 반박하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소리! 나는 아주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생각이 많은 만큼 늘 걱정 근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일 끝나고 퇴근하고 나서도 ‘내가 오늘 하루를 잘 보냈나? 실수하지는 않았나?’ 나의 행동을 자주 곱씹었고, 아까 그 사람이 나에게 했던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혼자 짐작하기도 잘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주말은 항상 쉬어도 푹 쉬는 것 같지 않았다.
특히 해야 될 일은 많은데 잠시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으면 내가 굉장히 죄를 짓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재깍재깍 시간이 가는 소리에도 금세 조급해졌고 괜히 나를 압박해오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바쁠 때는 못 느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수록 오히려 잡다한 생각들이 나를 더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자주 생각했다.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쉬고 싶은데 그게 나에게는 이렇게나 힘든 일일까? 모든 고민을 내가 다 끌어안고 살 필요는 없는데, 생각해보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은데, 내 머릿속에서는 언젠가 나에게 일어날 것 같은 상황들까지 지레 짐작해서 펼쳐놓고 있었다.
그건 독이었다. 너무 많은 생각은, 나에게 독이었다.
내 주변에도 나처럼 유난히 생각과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되는 일에 대한 조급함과 더 잘하고 싶다는 부담감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더 잘하고 싶기에 생각이 많고,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하기에 걱정이 많은 것이다.
남이 나에게 뭐라고 했든, 오늘 하루가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든, 후회든 실망이든 닥치는 그때 하는 연습이 나에게 필요했다. 인생에서 이런 것들은 과연 누가 가르쳐 주는 걸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나 스스로 나에게 말해 주어야만 했다.
오늘 하루 내가 힘들었다면, 그래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내가 힘들다면 잠시 동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있자고. 당신은 그래도 된다. 잠시만 더 이렇게 같이 멍 때리자. 이렇게 있어도 내 인생, 나의 쓸데없는 걱정만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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